Thursday, January 19, 2006

일본 우주산업 동네공장이 추진력

일본 우주산업 동네공장이 추진력
초정밀 금속가공·위성 단열재 등 첨단분야 뒷받침
10평 남짓에 직원 10명 업체도 기술은 세계 최고
대기업 하청 벗어나 71개사 공동 프로젝트 눈길
한겨레 박중언 기자

▲ 17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오비털엔지니어링의 허름한 공장에서 오염 방지용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가 위성에 사용할 최첨단 폴라마이드 단열재 패널을 만들고 있다.

제 아무리 깎기 어려운 재료라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줍니다.

지난 17일 일본 요코하마 중심가에서 내륙 쪽으로 한참 떨어진 가타쿠라 지역 주택가에 자리잡은 ‘야마노우치제작소’. 이 회사 반지하 공장에선 복합선반이 쉴 새 없이 니켈합금 덩어리를 세밀하게 다듬고 있었다. 회사의 허름한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트엔진 가공작업이 한창이었다.

1964년 창립한 종업원 70명 규모의 이 회사는 자동차 부품과 전기제품을 만들던 작은 업체였다. 일본에서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막을 내리던 16년 전 우주·항공 분야로 눈을 돌렸다. 로켓과 위성, 항공기 등에는 티탄·알루미늄·마그네슘과 같이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독특한 모양을 갖춘 정교한 부품들이 필요하다. 오차가 4~5미크론(100만분의 1m) 이내인 초정밀 가공이 ‘특기’인 이 업체로선 안성마춤이었다.


▲ 17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야마노우치제작소의 반지하 공장에서 니켈 합금 덩어리를 정밀하게 깎아 제트엔진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2월 발사된 운수다목적용 위성의 태양전지 패널에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됐고, 일본 중소기업으로선 처음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 부품도 수주했다. 우주·항공 분야 매출이 전체의 30~40%인 2~3억엔에 이른다. 야마우치 게이지로(47) 사장은 “다른 데선 몇 사람이 달라붙어 하는 작업을 우리는 한 명이 처리한다. 빨리, 정밀하게 그리고 값싸게 깎는 데 우리를 따라갈 업체가 없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곳에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대로 변의 한 낡은 건물.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10평 남짓한 공간은 위성에 사용되는 단열재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에서 볼 수 있는 오염 방지용 흰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폴리마이드라는 최첨단 단열재를 잘라 미싱으로 박고 있었다. +150~-150℃로 온도차가 극심한 우주공간에서 견뎌내고 우주선·자외선에 강한 고분자 플라스틱 필름인 폴리마이드를 10장 가량 겹쳐 위성의 외장패널을 만든다. 가로 60㎝, 세로 20㎝ 크기의 패널 한 장이 180만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며, 제작에 20시간 정도 걸린다. 오비털엔지니어링이라는 이 회사는 직원이 10명뿐이지만 우주 기기의 단열 설계에선 세계 일류급이다. 지난해 7월 발사된 엑스선 천문위성의 단열 외장재가 이 회사 제품이며, 미국·유럽 업체들과도 업무 제휴가 시작됐다.

우주·항공 분야에서 이들 동네공장(마치코바)의 활약도 놀랍지만, 각개약진을 해오던 이들이 최근 일본의 우주산업을 이끌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공동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점은 더욱 눈길을 끈다. 요코하마·도쿄의 동네공장들을 중심으로 71개사가 참여하는 공동조직인 ‘만텐프로젝트’는 지난 6개월 동안 120건을 수주했다. 올해는 수주 건수가 3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주문이 거의 없었던 이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이 프로젝트는 수주를 공동으로 할 뿐 아니라, 개별 기업들이 나눠 맡아 생산한 제품의 품질 보증도 한다. 국내와 해외 발주처에 대기업 제품에 못지 않은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1억엔짜리 독일제 3차원 측정장치도 리스 계약을 통해 들여왔다.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해오던 동네공장들이 이 프로젝트를 꾸린 것은 2003년 9월이다. 동네공장들이 함께 만든 민간 인공위성 ‘마이도 1호’의 발사계획이 큰 자극제가 됐다. 앞으로 “대기업을 거치지 않고 해외에 직접 기술을 팔자”는 취지에서 조직을 결성했다. 특히 거듭된 로켓발사 실패로 일본의 우주산업이 상당히 위축돼 대기업들의 철수가 잇따르자 동네공장들이 힘을 합해 그 공백을 메워나가기로 했다. 프로젝트가 출범한 뒤 뛰어난 가공기술을 갖춘 일본 동네공장들의 존재가 미국과 유럽의 항공기·로켓·위성 업체들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그렇지만 동네공장들의 고민 또한 적지 않다. 우주를 향한 도전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며, 이 분야의 비중이 미미한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우주산업이 워낙 빈약해 안정적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한다. 야마구치 고지(42) 오비털엔지니어링 사장은 “일본은 우주 분야에서 산업이라기보다 개발 수준에 있다”며 “로켓발사가 한번 실패하면 일감이 뚝 떨어지는 등 롤러코스터를 탄 심정”이라고 말했다.

요코하마/글·사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기사등록 : 2006-01-19 오후 06:35:00
기사수정 : 2006-01-19 오후 06:39:01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63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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