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28, 2006

로봇청소기의 고민, 로봇이야? 청소기야?

2006년 국내 시장 규모 8만대 예상…
‘로봇’ 품질과 ‘청소기’ 기능 사이 선택 갈림길

▲ 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에 진열된 로봇청소기 (사진=박미향 기자)

“너는 어느 쪽이냐?” 한때 한국사회를 달군 정체성 논란을 대표했던 이 질문(?)이 돌아왔다. 이번엔 사상검증을 위해서가 아니라 로봇청소기 시장이 무대다. 가전제품에서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뜬금없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로봇청소기 업체들은 시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2006년 시점에서 ‘로봇’과 ‘청소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람이 손으로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청소에서 충전까지 알아서 하는 로봇청소기는 맞벌이 부부와 실버 세대가 증가하고 가사 외 여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사회적 트렌드 속에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200만원대의 고가 수입품을 중심으로 국내시장에 처음 소개된 로봇청소기는 코스모양행이 미국 아이로봇 사의 상품을 수입하고 (주)유진로봇, 현대디지텍 등의 국내업체들이 자체 개발상품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대가 10~30만원대까지 낮아진 상황이다. 현재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판매되는 로봇청소기의 종류는 약 150여 개이다.

이에 따라 시장도 급격히 커졌다.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로봇청소기 시장은 2004년 총 수요 7천대 수준에서 2005년에는 3만대로 4.3배 정도 성장했다. 업계는 “2005년이 스팀 청소기의 해였다면 2006년은 로봇청소기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판매량이 올 한 해 5만대는 가뿐히 넘어서 최고 8만대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은 지난해 10월부터 ‘무선/로봇 청소기’ 카테고리를 따로 개설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옥션의 지경민 과장은 “로봇청소기는 매달 2배가량의 판매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하루 평균 50여대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은 로봇청소기의 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의 성장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미국 아이로봇 사의 룸바를 수입하는 코스모양행의 윤준덕 과장은 “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로봇청소기가 판매되는 곳이 우리나라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 특유의 얼리어댑터(Early adaptor, 초기 수용자)적인 성향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입소문 문화가 급격한 시장 확대의 동력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문제는 로봇청소기 시장이 형성기를 넘어서는 길목에서, ‘로봇’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와 함께 ‘청소기’로서의 기능에 대한 요구를 지금의 기술력과 가격대가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봇산업은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관련 부품 산업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부품산업 수준으로는 고객의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낮은 가격의 제품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를 기점으로 쏟아진 저가형 상품들로 인해 시장의 저변은 넓어졌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품질 때문에 로봇청소기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이 초기 형성단계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사장될지도 모른다는 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100만원대의 고급형 로봇청소기 ‘로보킹’을 생산, 판매하고 있는 LG전자 청소기상품기획그룹의 윤석원 과장은 로봇청소기 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로봇다움과 청소기로서의 성능 사이의 조화”를 꼽았다. 윤과장은“‘로봇’이라는 단어에서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무선으로 작동하는 점은 모든 동력을 배터리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점으로도 작용한다”며 “그와 동시에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청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하려면 턱없이 비싼 가격이 될 수밖에 없어 시장성이 떨어지므로, 현재 고객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기능을 가지는 수준을 맞추면서 가격의 합리성에서 고객과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50만원대의 로봇청소기 ‘룸바’로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코스모양행의 윤준덕 과장도 “룸바의 가격에 대해 ‘로봇’을 기대하는 소비자들은 ‘너무 싸서 덜 미덥다’고 하고 ‘청소기’를 기대하는 소비자들은 ‘너무 비싸다’고 반응한다”며 양분되는 소비자의 반응을 소개했다.

‘로봇’과 ‘청소기’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 로봇청소기 업계의 빅 3라 할 수 있는 아이로봇의 ‘룸바’, (주)유진로봇의 ‘아이클레보’, LG전자의 ‘로보킹’의 대응은 각기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띤다. 우선 아이로봇의 ‘룸바’는 ‘청소기’에 방점을 둔다. 미국 본사인 아이로봇 사에서는 룸바를 ‘청소로봇’이라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로봇청소기’라는 이름을 고수한다. 비슷한 가격대의 경쟁제품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갖는 청소 효과를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1.5센티미터의 턱을 넘나들고 장애물 감지 센서가 없어 가구 등에 부딪치기는 하지만 그만큼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는 ‘돌쇠 이미지’를 강조한다. ‘룸바’의 수입사 코스모양행의 윤준덕 과장은 “제작사인 아이로봇은 막연한 로봇의 이미지보다는 인간 생활에서 얼마나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기능을 더욱 강조한다”면서 “하지만 고가형 경쟁제품에 대비해 고급 브랜드와의 공동 마케팅 전략을 통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룸바는 지난해 수입차 브랜드 아우디와 함께 공동마케팅을 펼친 바 있다.

이에 반해 LG전자의 ‘로보킹’은 ‘로봇’의 측면을 강조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LG전자 윤석원 과장은 “로보킹은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항법장치 등에 사용되는 자이로(Gyro)센서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로봇에 가장 가까운 청소기”라고 강조했다. 로봇청소기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배터리 문제이다. 메모리 현상에 의해 배터리 수명이 완전 방전된 후 충전하지 않으면 배터리의 수명이 현격히 줄어드는 니켈수소전지를 쓰는 일반 로봇청소기와는 달리 ‘로보킹’은 메모리 현상이 없는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수명이 5년가량 유지된다고 윤 과장은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 로봇청소기 시장이 커나가는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판매 창구를 백화점으로 제한해 운영하면서 오피니언리더에 집중하는 마케팅 전략을 이용했다. 다른 저가 제품들에 비해 ‘믿을 만한 로봇청소기’라는 고객의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 LG전자 측의 설명이다.

삼성, 올해 안 시장 뛰어들 듯

한편 ‘저렴한 가격에 높은 청소 능력’을 강조하는 (주)유진로봇의 아이클레보는 로봇전문회사의 제품답게 ‘로봇청소기’보다는 ‘청소로봇’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최근 출시된 고급형 아이클레보Q 제품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7개의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해다니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서의 측면이 한층 더 강화됐다. (주)유진로봇의 김영재 이사는 “올 상반기에 기능이 더 강화된 청소로봇을 출시할 계획”이라며 청소기로서의 기능적인 면을 보강할 것을 시사했다.

아직 정확한 시점을 밝히진 않았지만 삼성이 올해 안에 로봇청소기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고, 200만원대의 고가형 수입브랜드인 카처도 중저가형의 보급형 로봇청소기를 출시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로봇’과 ‘청소기’ 사이의 균형에서 고객의 입맛에 딱 맞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만이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 자명한 지금, ‘바로 그 지점’을 찾으려는 업체들의 줄타기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조수영 기자 zsyoung@economy21.co.kr

기사등록 : 2006-01-26 오후 02:23:44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21/981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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